NFC(근거리무선통신)가 가전제품을 만났을 때
[주간동아]NFC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세탁기. 스마트폰을 활용해 세탁기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
가전제품이 근거리무선통신(NFC)을 만나 똑똑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기능을 선택하고 냉장고나 세탁기에 갖다 대기만 하면 해당 제품을 구동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복잡한 스마트가전의 여러 기능을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편한 스마트폰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최신 스마트폰에 NFC 칩을 기본 장착하는 트렌드를 타고 가전에도 NFC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NFC란 근거리무선통신, 즉 ‘Near Field Communication’의 약자다. 13.56MHz 대역 주파수를 이용해 10cm 내 짧은 거리에서 단말기끼리 데이터를 상호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NFC 칩을 탑재하면 단말기끼리 정보를 대량으로 전달할 수 있다. 블루투스 같은 근거리 무선 전송기술과 달리 NFC의 가장 큰 강점은 편리하다는 것이다. 블루투스만 해도 단말기 설정을 하고 때로는 비밀번호까지 입력해야 연결되지만, NFC는 설정에 필요한 단계를 전부 생략할 수 있다. 터치 한 번으로 단말기 2개가 연결된다.
게다가 NFC는 보안성이 뛰어나 결제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만 가져다 대면 구매에서 결제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것은 NFC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스마트폰 제조사도 모바일결제 시장의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고 NFC 칩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바일결제 시장은 생각보다 빨리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카드사와 이동통신사의 이해 다툼, 가맹점 부족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카드사와 이동통신사는 주도권 다툼을 하고, 전체 250만여 카드 가맹점 가운데 NFC 방식으로 결제가 가능한 단말기 ‘동글’을 설치한 곳은 7만여 곳에 불과하다. 국내에 보급된 NFC 지원 스마트폰은 2000만 대를 넘어섰지만, 이 NFC 스마트폰을 활용할 만한 마땅한 시장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NFC는 새로운 가전 핵심 기술
NFC 기술을 접목한 레이저 프린터. 스마트폰을 프린터에 갖다 대면 스마트폰에 담긴 문서를 출력할 수 있다.
빛을 보지 못한 NFC에 가전업체들이 주목했다. 지난해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NFC가 확산됐다면, 올해는 그 인프라를 바탕으로 가전 NFC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올 한 해 가전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세계 최대 가전쇼 ‘2013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도 NFC는 새로운 가전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았다.
소니는 TV, 스마트폰, 스피커 등 CES에서 발표한 모든 제품에 NFC 기술을 적용했다. ‘원터치’라는 이름을 붙여 모든 가전끼리 상호 연결되는 모습을 시연했다. 서로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콘텐츠를 주고받을 수 있어 편리함을 극대화했다.
LG전자도 CES에서 NFC를 활용한 스마트 생활가전 전략을 발표했다. 예컨대 스마트폰에서 원하는 요리 메뉴를 선택한 후 스마트오븐에 가져다 대면 별도의 버튼 조작 없이 조리시간 및 온도를 자동으로 설정할 수 있는 식이다. NFC 기술로 스마트 진단도 가능하도록 했다. CES에서 삼성전자는 NFC를 이용해 휴대전화와 연계할 수 있는 스피커를 발표했다.
가장 먼저 NFC 기술을 가전에 도입한 업체는 일본 파나소닉이다. 파나소닉은 지난해 처음으로 가전제품에 NFC 기술을 적용, 첫선을 보였다. 문 열림 횟수에 따른 절전 정보와 조리법 기능을 지원하는 냉장고는 물론, 세탁기와 에어컨 등에도 NFC 기술을 적용했다. 최근 파나소닉은 NFC 칩을 장착한 카메라도 공개했다.
CES에서 NFC 붐이 일어난 후 국내 가전 시장은 NFC로 달아오르고 있다. LG전자는 지난달 국내 최초로 NFC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세탁기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NFC 기술을 이용해 간단한 접촉만으로도 새로운 맞춤형 세탁 코스를 다운로드하고 세탁기 상태도 진단할 수 있다. 사용자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원하는 세탁 코스를 선택한 후 스마트폰을 세탁기 NFC 태그에 대면 즉시 신규 코스를 내려받을 수 있다. 이 세탁기는 기본 12가지 세탁 코스 외에 탈수전용, 아기 옷, 조용조용, 컬러 케어, 에어클리닝, 헹굼 탈수 등 신규 코스 6개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삼성전자는 NFC 기술을 적용한 레이저 프린터를 출시했다.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단말기 화면에 뜬 사진, 문서, e메일을 바로 출력한다. 별도로 드라이버를 설치하거나 와이파이를 설정해 연결할 필요가 없다. 이 프린터 역시 전용 앱을 설치하면 기능이 늘어난다. PDF 문서, MS오피스 문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콘텐츠도 출력 가능하다. 반대로 프린터에서 스캔한 문서를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도 있다.
동부대우전자는 냉장고에 NFC 기술을 적용했다. 전용 앱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으면 원격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제품 이상 내역을 서비스센터로 바로 전송하고 애프터서비스(AS) 신청을 접수한다. 또한 냉장고 온도 점검, 절전 효과 분석 등 소비자의 사용습관을 분석한 자료도 제공한다.
소형 가전에는 이미 대세
소형 가전에서는 이미 NFC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소니, 자브라 등 음향기기 전문업체는 최근 프리미엄 제품군에 잇달아 NFC 등 무선통신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NFC 칩을 장착한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NFC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에 접촉하는 식이다.
모바일 액세서리 전문업체도 NFC 시장에 눈독을 들인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각종 가전은 물론 소형 음향기기까지 NFC 기술이 확산되면서 신성장동력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벨킨은 HD 블루투스 뮤직 리시버를 출시했다. NFC 칩을 탑재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이 제품에 올려놓으면 바로 연결할 수 있다. 연결이 완료되면 스마트폰에 담긴 음악을 도킹 시스템이나 연결 케이블 없이 무선으로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가전에 NFC 기술을 적용하는 걸까. 앞서 설명했듯이 스마트폰에 이미 NFC 기술이 보급됐기 때문이다. 가전업체들의 고민을 스마트폰이 해결해준 것이다. 이미 부가기능을 많이 넣은 스마트가전이 출시됐지만 사용하는 게 불편해 소비자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NFC 기술이 적용돼 가전제품은 언제든지 부가기능을 추가할 수 있고 다루기도 쉬워졌다.
전문가들은 가전의 NFC 미래를 밝게 점친다. 이해 당사자가 많지 않고 부담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은 킬러 콘텐츠라고 할 만큼 소비자의 구미를 당길 만한 매력이 없다. 그 몫은 가전업체들이 감당해야 한다.
문보경 전자신문 부품산업부 기자 okmun@etnews.com